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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지일(知日)로 극일(克日)을

경북정치신문 기자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19/08/11 12:30 수정 2019.08.11 12:30
지경진(한국unity-liberty연구소)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정서적으로 먼 나라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의 과거 만행에 대하여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는 국민의 이러한 감성을 바탕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 대하여 더 강한 사과를 받고 싶어 했다. 민족을 배신한 친일은 용서할 수 없지만 경제적 번영을 위한 한일 우호관계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임에도 현 정부 여당은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며 정치권을 친일파와 반일파로 이등분하고 있다. 남의 칭찬받기 좋아하고 비난받기 싫어하는 일본인은 최근 한국의 일본 약 올리기 정책에 대하여 협력적 관계를 보복적 관계로 전환하고 한국 핵심 산업에 대한 수출 규제 정책을 선택하고 있다.

한국의 반일 감정부추기에 대하여 일본은 한국 경제 소멸을 위한 치밀한 사전 계획으로 전 방위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향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남북 관계만 좋아지면 극일이 가능한 것처럼 대응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일 정서를 자극하여 일본 상품 불매, 일본 여행 반대 등과 같은 반일 운동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갈등은 군사 전쟁이 아니라 경제 보복으로 전개된다. 우리로선 용납할 수 없는 매우 불쾌한 일이지만 일본인의 마음 깊은 곳에 한반도 지배의 그리운 추억이 남아있으므로 냉철한 지일(知日)을 통하여 실효성 있는 극일(克日)로 나가야 한다. 반일 정책은 기본적으로 친중 친북 위한 정책의 뒷면이다.

あいまい(아이마이, 曖昧) 성향이 있는 일본이 한국에 경제 보복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을 결코 일본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고 미국 주도의 국제 사회와 공조한 정책임에 틀림없다.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극일(克日)이 가능함에도 한국사회에서는 일본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현상이다.

첫째, 일본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반응하는 나라다. 자기보다 힘이 월등한 나라와는 절대로 다투지 않는다. 16세기 포르투갈로부터 서구식 산업을 재빨리 배웠고, 조총을 대량생산하여 일본 천하를 통일하고 조선반도와 중국대륙으로 진출하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다. 1902년 당시 세계최강국 영국과 동맹을 맺었고, 1904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려는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임란 직전 조선 정부는 일본의 침략을 예상한 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구한말 국제 정세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친중파, 친러파, 친일파, 쇄국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국제 정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와의 싸움에 밀리지 않으려면 방법은 오직 하나다. 분열하지 않고 대동단결하는 일이다. 아베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은 한국 정파 간의 친일 반일의 파벌로 분열하는 짓이다.

둘째, 일본은 한반도의 분열을 이용하여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미 서양 열강들에 합류, 제국주의를 이룩하였고 세계적 강대국이 되었지만 한국은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중국의 무력 팽창과 북한의 핵무기로 인하여 동북아시아의 군사력 균형 유지가 필요한 이 시대에 한국은 무조건적인 친중 친북 정책을 노골화하자 초강대국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지지하고 군사적 강국이 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 정책의 명분을 한국과 북한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일본은 전형적으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철저한 실리주의 외교 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점을 가장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나라다. 1905년 일본은 미국과 카쓰라-테프트 조약을 맺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면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허락받을 정도로 친구인 것 같았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은 미국 태평양 함대의 심장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미국에서는 각각 ‘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Pearl Haebor!)’며 전물 장병을 추모하였고, 일본에서는 원폭에 살아남은 건물에 히로시마 세계 평화 기념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미국과 일본은 이처럼 철천지원수 같은 과거사가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마자 일본은 재빨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1952년 미국과 안보 조약을 맺어 과거 원수처럼 적대시하던 마음을 속으로 삭이며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성장과 패권적 정치에 불안을 느끼면서 군사력을 증강시키며, 미국과 긴밀한 군사 동맹을 맺고 있다.

끝으로 한국은 지금 국가 안보 불감증에 빠져 있다. 현재 한국이 미국과 중국 등거리 외교 노선을 선택하고 친중 친북 정책을 선회하는 그 순간 일본은 선제적으로 최강국 미국과 손잡고 합동 군사 훈련을 전개하게 된다. 일본은 자신보다 국력이 월등히 강한 나라와는 반드시 동맹을 맺고, 친선 관계를 유지하여 실리 외교를 선택한다. 예스와 노우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애매 성향이 강한 일본이 노우를 외칠 때는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알아야 한다. 친중 반미를 표방하여 대통령이 된 필리핀의 두테르테, 미국과 오랜 전쟁을 했던 베트남 공산주의 국가도 중국의 패권 위협에 맞서기 위해 친미를 선택했다.
정글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게 되거나 아니면 그 때까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국제 사회와 공조하는 길 뿐이다. 한국인은 ‘한미 군사 동맹은 좋다, 한미일 3자 군사 동맹은 싫다’는 감정으로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 올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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