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거창한 게 삶인 줄 알았네
마주 앉은 연인과 속삭이기보다
진실과 정의를 노래하고
밥상을 마주 하고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존재와 실존을 논하는 게 삶인 줄 알았네
가슴 아린 이웃을 다독이기보다
가로수 울창한 길을 가며 고독을 씹고
식기통에 쌓인 그릇을 씻기보다
먼 산을 품어안고 원대한 꿈을 꾸는 게
거창한 삶인 줄 알았네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네
삶은 저 멀리 있는 거대한 풍경이 아니었네
사랑하는 이의 어깨를
손바닥이 닳도록 다독여 주고
먼저 일어나 쌓인 그릇을 씻어주는 게
삶이었네
마룻바닥에 쌓인 먼지를 닦고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를 거둬들이는 게
소중한 삶이었네
내가 나의 일에 갇혀 스스로 감동하기보다
남을 감동시키는 게 삶이었네
나의 세계에 갇혀 눈물을 흘리기보다
내 고운 가슴 그대에게 흘러
그대를 울리게 하는 게 삶이었네
삶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네
*발행인 김경홍/ 1994년 신춘문예, 계간 문예지 신인상 통해 시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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