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춘 교수가 몇 년 전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청년들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가를 확인하려는 작업이었다. 청년들 사이엔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없지 않아 “경제발전을 통해 중산층을 만든 부국 대통령”, “새마을운동 성공” 등에 두루 동의했다. 그러나 부정적 인식이 더 많았다. 그들은 “박정희=장기집권을 한 독재자”란 생각을 여전히 품고 있고, “친일파”, “정경유착으로 재벌을 살찌우고 노동자를 착취했다”는 것 등을 과오로 꼽았다.
이처럼 ‘박정희 지우기’의 핵심 키워드의 하나인 ‘노동 착취론’의 논리는 이렇다. “박정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재벌을 살찌운 것이다.” 청년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준 원인은 전교조 등으로 대표되는 좌파의 왜곡된 현대사 교육 탓이다. 박정희 통치 18년 ‘한강의 기적’은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 이뤄졌는가? 이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볼 때, “완전한 자유가 우선이냐?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류석춘 교수는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2018, 기파랑)에서 이렇게 답한다. “박정희 시대의 노동자들이 정말 ‘착취’를 당했다면,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난해졌어야 했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광범위한 중산층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중화학공업 발전을 위해 ‘산업 전사’인 기능공을 대량 육성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배출된 기능공 숫자는 2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류석춘 교수는 실증 작업을 거쳤다. 1970년대 기능공으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2015년 재직 중인 노동자들의 급여 자료를 입수해 40여 년간의 임금 추이를 일일이 확인하고, 이들과 기아기공·대우중공업 출신 노동자 39명을 심층 면접했다.이들 기능공의 임금은 1980년대 초·중반 정체기를 겪었으나 1980년대 후반 노조 설립, 1990년대 중반 노사 협조기로 들어서며 폭발적 상승세를 탔다. 2015년 현재 임금은 연 1억원 수준으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최상위에 속한다.
박정희는 ‘경제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중화학공업을 일으켰고, 이를 위해 대규모의 기능공 집단을 양성했다. 이들이 1970년대 경제성장의 주역이 됨과 동시에 ‘숙련노동자 중산층’으로 성장하는 계층의 수직 상승을 이룬 것이다.그러나 중산층에 진입한 이들이 박정희 사후 1980년대 ‘민주화투쟁’을 주도했고, 그 일부가 노동조합을 등에 업은 ‘노동귀족’으로 변질해 자기 파괴적 파업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만들었다. 고로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는 주장은 지금의 장년 세대를 욕보이는 일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정치화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80년대 NL, PD계열 운동권의 각 공장 침투로 인해 한국의 노동운동은 북한을 ‘노동자의 세상’으로 여기는 잘못된 이념 지향성을 갖게 되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에서 전체주의 국가 북한과의 연계를 주장하는 각종 구호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박정희 18년은 공산주의 100년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하려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독재정권처럼 국민을 가난하게 만드는 ‘빈민정책’을 써야 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 중산층이 형성됐고, 그 중산층의 힘을 바탕으로 민주화가 달성된 것이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기업은 망하면 다시 만들면 되지만, 나라가 없으면 기업이 없다”며 “국가가 살아야 기업도 산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이념으로 삼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일자리”라며 임금피크제 같은 노동개혁을 촉구했지만, 정권 교체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시장은 세계와 반대로 가고 있다. 그 결과 고용률은 크게 줄었고, 청년 일자리는 대란(大亂)으로 번지고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독일 노동개혁을 사민당 정부가 해냈던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문재인 좌파 정부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또한 대기업 노동중산층은 노동개혁에 동의해 ‘노동보국(勞動報國)’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날개가 없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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