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정치신문= 김경홍 기자]  자유한국당이 11월 29일 전격적으로 꺼내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이날 오후로 예정된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처리가 예고됐던 200여 건의 민생·안전·경제법안 처리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날 각종 영상 매체의 카메라 앵글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한 여인의 절규를 세상에 내보내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몰아치는 늦가을 저녁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주인공은 11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 첫 질문자로 나선 민식이 (9세) 엄마 박초희 씨. 이날 가고 없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마이크를 잡은 외로운 그녀는 스쿨존 안전 강화 법안의 필요성을 흐느끼며 세상에 호소했고,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아픔과 함께했다.

하지만 민식이의 비극을 가슴에 쓸어 담고 생과 사의 울담을 힘겹게 걸어가는 그 여인의 지치고, 아픈 생을 다소나마 다독여 주리라고 믿었던 ‘민식이 법’, 이른바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법안이 필리버스터로 무산된 것이다.

타협이 없는 정치, 인간 사랑의 가치관이 결여된 한국의 현실정치가 낳은 이단아의 횡포였다.

↑↑ 국회 의사당. 사진= 이관순 기자

◇왜 그 여인은 울고 있고, 국민은 또 흐느끼고 있나

2019년 9월 11일 등교 시간대의 충남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머니와 동생은 총총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9세의 어린 동심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또래들과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기를 꿈꾸던 어머니의 꿈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시속 23.6km로 달리던 차량이 어린 소년을 덮친 것이다. 차에 깔린 아들을 품어안은 어머니의 절규와 소리내 울어대던 동생의 간절한 사랑도 세상을 뒤로 한 채 떠나는 이별의 발길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가슴 아픈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상은 어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과 함께했다.

당시 차량은 어린이보호구역의 제한 운행 속도인 시속 30km에 훨씬 못 미치는 시속 23.6km로 운행했지만, 불법 주정차 중인 차량이 시야를 가리면서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사고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은 더했다.

확인 결과 어린이 보호 구역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신호등과 안전펜스는 물론 과속 카메라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어린 소년의 어머니는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호소했고, 외로운 노력에 힘입어 법안 개정 국회 발의와 청와대 국민청원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결국 2019년 10월 11일,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 일명 ‘민식이 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어린이보호구역에 의무적으로 신호등과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도록 하고,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해자를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한편 음주 운전·중앙선 침범 등 '12대 중과실'이 원인이 된 경우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회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2019년 11월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는 해당 법률 개정안을 전원 합의로 통과시켰고. 이어 11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은 이날 오후 본회의에 상정돼 의결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여야 정치권의 비타협 정치가 낳은 필리버스터가 결국 민식이법을 무산시켰다. 등굣길 횡단 보도를 건너던 어린 아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한 여인, 그 여인의 쏟아내는 하염없는 눈물이 세상을 다시 한번 울리는 이유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