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 한국U&L연구소] 초록빛 사파이어, 파랑색 에메랄드, 빨강색 루비, 노랑색 황옥, 보랏빛 자수정 등 다양한 색채를 함께 뿜어내는 오팔(Opal)이란 광물은 고대 로마 황실과 예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온 귀중한 보석이다. 오팔(OPAL) 세대란 ‘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약어로 고령화 사회에서 다양하고 활기찬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을 말한다. 한국동란 이후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8년생 개띠’의 ‘오팔’과 발음이 같다. ‘뉴실버 세대’, ‘액티브 시니어’, ‘신중년층’, ‘욜로세대’ 등 다양하게 불린다.
이들은 2020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뿜어내며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와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 센터에서는 1958년 ±5년에 태어난 이들 5060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한 때는 노년층으로 불리며 사회적 존재감이 약했지만, 이제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직장을 떠나 다시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하거나, 활발한 여가 취미 생활을 즐기며, 정체된 시장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지경진 소장. 사진 =한국U&L연구소 제공 |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 세계 경제 전망’에서 만 65세~75세의 젊은 노인, ‘욜드(yold, young old)’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으며 이들은 새로운 소비문화와 금융시장을 주도할 것이라 전망했다. 특히 한국에서 한 해 80만 명 이상이 태어난 이들은 2015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711만 명이 넘고, 전체 인구의 28%에 차지하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하여 보호받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기, 열정으로 일하는 중년기, 조용히 은퇴 생활하는 노년기로 분류하던 생애 주기의 전통적 통념이 바뀌고 있다.
이들은 전통사회에서 자랐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변하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전통과 혁신의 양면성으로 2020년 한국 사회의 소비문화를 주도할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7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50대의 97.6%, 60대의 81.2%가 스마트폰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50대 이상 월평균 데이터 이용량이 3.1GB로 3년 전에 비해 2배 빨리 증가했고, 젊은이들보다 증가속도가 더 빨랐다.
같은 기간 이들의 유튜브 사용시간이 2배로 증가했다. 혁신과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 꼴통’ 또는 ‘꼰대’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일과 여가생활의 변화에 도전하고 있다. 경제성장 10%대의 고도 성장기에 청년시절을 보낸 이들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은 경제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직도 자신과 자녀와 부모를 위한 행복한 소비생활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들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 개념의 자녀 사랑과 효를 실천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학력과 소득 수준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은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성취 지향적이다. 물자가 귀하고 경제적으로 어렵던 어린 시절로 인하여 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으며, 성인 자녀를 두고 있고, 노부모 부양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한다.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은퇴 후 손자녀들 보육에도 적극 참여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할배 할매’보다는 ‘약간 늙은 아저씨 아주머니’에 더 가깝고 ‘할빠, 하빠’ 또는 ‘할마, 함마’로 불린다.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귀한 버팀목 세대들이다.
그러나 성취감을 느끼며 활동적으로 살아오던 오팔 세대는 최근 자녀 세대와의 기본적 정치 성향의 차이를 확인하게 되면서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몸담아 온 이들 오팔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국가관, 역사관, 통일관에 대하여 80연대~90연대생의 자녀들과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인생관, 행복관의 차이보다 국가관, 정치관의 차이를 알았을 때, 더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자식들의 공공의 가치관에 대하여 학교교육에 맡겼으며, 자녀와의 충분한 대화의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최근 오팔세대 부모들은 8090 감성 세대 자녀들과 대한민국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는 정치현실을 바라보는 공공(公共)의 관점 차이로 인하여 큰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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