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항공사진 |
[경북정치신문=김석영 기자] 내년 4월 2일 김천시장 재선거를 앞두고 10여 명의 출마예상자가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부분 국민의힘과 관련이 있는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다. 이들 중 일부 유력 인사들은 공천 여부와 관계없이 출마를 강행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당 차원에서 후보를 공천할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출마예상자들이 난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민선 8기 시장 선거 중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경우가 1기, 3기, 7기 선거 등 세 차례여서 ‘유력 정당 후보 공천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일각의 분위기도 출마예상자 난립을 돋우는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 김천 정치
김천시는 역대 국회의원·시장 선거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도드라진 특징을 지닌다. 중앙 관료나 명문대 출신, 유력 정당 후보도 중졸이나 9급 공무원과 지방의원 출신에게 고배를 마시곤 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3대 문종두 의원은 37세에 당선됐다. 41세에 당선된 임인배 의원보다 4년 빠른 나이에 등원한 문 의원은 지역 언론 사장과 최연소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철안 의원은 여성이면서 중졸 출신으로 재선에 당선돼 자유당 중앙당 부인부장을 맡았다. 임인배 의원은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관의 이력으로, 서울법대 출신 법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정해창을 눌렀다.
시장 선거의 경우도 이러한 흐름과 다르지 않다. 박팔용·김충섭 시장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또 박보생·김충섭 시장은 지방직 9급 공무원, 박팔용 시장은 경북도의회 의원 출신이다.
행정고시(김관용, 남유진), 지방고시(김장호) 출신 시장을 배출한 구미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 역대 시장 선거
⇁제1회 선거 (1995년 6월27일)
무소속 박팔용 후보가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은 이성우 후보를 누르면서 이변을 연출했다.
선거 결과 51.26%를 득표한 무소속 박 후보는 39.52%를 얻은 민자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11% 차로 눌렀다. 박 시장은 경북도의회 의원 출신이다.
⇁제2회 선거(1998년 6월 4일)
1회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팔용 시장은 2회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 75.63%를 득표해 재선 시의원 출신으로 18.83%를 얻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김정배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눌렀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주 후보는 5.52%를 얻었다. 민주당은 8회 시장 선거 중 2회 선거에만 후보를 공천했다.
⇁제3회(2022년 6월 4일)
1회 선거에서 무소속, 2회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출마했던 박팔용 시장은 임인배 국회의원과의 불화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회에 이어 3회 선거에서도 무소속 박팔용 후보는 53.93%를 득표해 36.62%를 얻는 데 그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조준현 후보를 17% 차로 눌렀다. 박 시장은 1회에 이어 3회 선거에서도 이변을 연출했다.
⇁제4회(2006년 5월 31일)
9급 출신으로 박보생 시장 시절 국장을 지낸 지방직 9급 출신의 박보생 후보가 당선됐다. 해외 출장 중이던 박팔용 시장과 상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화설이 나돌았다
.
무소속 최대원 후보가 바싹 추격하면서 박보생 후보가 긴장했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박보생 후보 50.09%, 무소속 최대원 후보는 46.57%였다. 3.5% 차에 불과했다.
1956년 생으로 고려장학회 이사장인 최 후보는 검정고시 출신이다. 시장 선거에서 석패한 그는 12년 후인 2018년 이철우 경북지사가 지사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을 사직하면서 발생한 재보궐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49.6%를 얻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송언석 후보에게 수백 표차로 고배를 마셨다.
⇁제5회(2010년 6월 2일)
한나라당 박보생 후보가 69.78%로 30.21%를 얻은 무소속 김응규 후보를 눌렀다. 김 후보는 경북도의회 의원 출신이다.
⇁제6회(2014년 6월 4일)
새누리당 박보생 후보가 68.37%를 득표하면서 3선 시장에 당선됐다. 차점자인 무소속 김정국 후보는 15.47%였다.
김 후보는 김천시의회에 초선으로 등원해 전반기 의장에 당선되면서 화제를 뿌렸다.
⇁제7회(2018년 6월 13일)
구미 부시장을 지낸 지방직 9급 공무원 출신인 무소속 김충섭 후보가 50.79%를 얻어 33.75%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김응규 후보를 여유있게 눌렀다.
8회 선거 중 세 번째 무소속 시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6회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분루를 삼킨 김응규 후보는 7회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재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8회(2022년 6월 1일)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충섭 시장은 8회 선거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다. 75.06%의 높은 득표율로 11.42%를 득표한 차점자인 무소속 이선명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대구와 자웅 겨루던 김천
1949년 8월 15일, 광역시로 분할이 되기 이전 경북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시와 함께 같은 날 시로 승격된 곳이 바로 김천이다.
풍부한 역사적 토양 속에서 김천은 교육과 경제의 꽃잎을 풀어 올렸고, 그곳으로부터 잉태한 씨알들은 도내는 물론 전국에 문명의 꽃을 피워내는 종자를 제공했다.
1948년 시 승격 당시 금릉군을 포함해 19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1960년대 들어 21만 명을 마크하면서 마의 20만 시대의 진입 능선을 뛰어넘었다. 1965년 당시 도내 최대 인구를 자랑하던 26만 5천 명의 상주군과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그러나 제19대 총선을 목전에 둔 2015년, 단독 선거구를 유지하기 위해 김천은 인구 하한선인 14만 명 사수에 안간힘을 쏟아야 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931년 4월 1일 김천면이 김천읍으로 승격한 데 이어 1949년 8월 15일 대구시와 함께 시로 승격하면서 유서 깊은 전통의 길을 걸어 온 김천시, 인구 격감으로 시세는 위축되고 있으나 시 승격 76년을 맞은 김천시의 자존심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오랜 전통 속에서 쌓아 올린 김천 정신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영롱한 빛을 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석영 기자 gbp1111@naver.com
사진=경북정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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