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사 주변의 모습(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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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산업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이를 예견한 일본이나 유럽은 한발 앞서 있다. 이들 나라는 문화유산에 역사와 전통, 나아가 신비의 옷을 입힌다. 가까운 일본 대마도를 가봐라. 우리들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사찰에도 소중한 역사와 전통의 옷을 입혔다. 외국 관광객들은 그 역사의 현장 앞에 발길을 멈춘다”
외국 여행을 경험한 구미인들의 얘기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의 고아읍 대망리 속칭 망장에서 태어난 고산 황기로 선생(1521년- 1567년)은 문인으로 신라시대 김생은 서성(書聖), 무인으로 이순신 장군 성웅(聖雄)과 함께 조선시대의 초성(草聖)으로서 우리나라 삼성 중의 한분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도 존경하는 고산이 금오산 등산로변 암벽에 쓴 서체, 금오동학은 관리 부실로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읽은 수 없을 만큼 퇴색이 된 상태다.
↑↑ 지금의 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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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원평동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유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산물 가공 공장 흔적이 있다. 선산읍 생곡리에서 신평동 앞들에 이르는 광할한 벌판은 후삼국 통일의 전적지이다.
뼈 아픈 역사일런지 모르나 선산읍에 있는 김재규의 생가도 방치되고 있다.
역사적 존재가치는 두가지 측면에서 의미와 교훈을 부여한다.긍정적인 존재는 더 발전 계승시켜야 할 대상이고, 부정적 존재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또 다른 교훈의 대상이다.
1907년 일제가 독립투사를 투옥하기 위해 건립한 서대문 형무소는 아픈 역사지만 지금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라는 또 다른 역사의 이름으로 우리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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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원도심의 잊혀지는 전설 ‘번사’
도시의 역사를 거슬러가면 그 곳에는 산이 있고, 개천(강)이 있다. 뒤에 산을 끼고 앞으로 강이나 천을 낀 배산임수의 지리적 요건 때문이다. 땔감을 구하고, 농사를 지어야 했던 생존 조건이다. 자연적, 인위적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인 측면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지금의 구미시를 형성한 핵심지역 중 원평동은 금오산과 구미천, 선산읍은 비봉산과 단계천을 사이에 두고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
산업화의 홍역을 치룬 이들 두 지역은 현재 원래의 생태환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만나고 있다. 주차장 확보를 위해 복개한 단계천을 원래의 생태환경으로 복원해야 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원형이 사라진 구미천 중턱, 중앙시장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번사의 옛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상전벽해의 역사와 함께해 온 구미, 선산인들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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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원평동 환경미화원 사무실 뒤쪽에는 1970년대 개통된 경북고속도로가 있고, 도로와 어깨를 낀 곳에 아직도 샘물이 흘러내려 고인 수백미터의 물웅덩이가 있다.
이곳이 바로 60년대말에서 70년대 초반, 대승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구미천을 따라 흘러내리다 샘물을 이룬 곳인 번사다.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지금의 도량동 굴다리에서 구미고로 이어지는 구간은 개울물이 흘러내리는 곳이었고, 개울물을 끼고 자리잡은 가축시장(지금도 가끔 장이 선다)에서부터 환경미화원 사무실 뒤편까지는 논이었다. 그 논을 끼고 샘물이 흘러넘치는 1, 2 번사가 있었던 것이다.
여름이면 원평동의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아낙들은 빨래를 하기도 했다. 고기들이 떼지어 다닐 정도였던 번사는 산업시대로 접어들던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지 역 주민들의 애환과 서러움을 씻어주던 곳이었다.
↑↑ 우시장과 가축시장이 열리던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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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은 1번사는 물이 깊어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의 자리였고, 2번사는 물이 얕아 수영에 서투른 아이들이 즐겼던 곳이었다며,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지금도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소위 ‘번사계추’를 만들고, 이를 핑계삼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잊혀져가는 낭만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자연보호 발상지인 구미이면서 녹색 도시를 지향하는 구미시, 역사의 향수가 살아 있는 번사를 생태하천으로 잘 다듬어 시민들에게 되돌려야 하는 책임을 내펭게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번사와 함께 살아온 시민들의 지적이다.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번사를 지켜보아 왔다는 김모(84세) 마을 주민은 “고속도로가 들어서기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우시장이 들어서고 멱을 감는 아이들, 빨래를 하는 아낙네 등 사람들이 북적였던 ‘구미의 대표적인 시민의 쉼터이면서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었다’며“번사물의 크기도 작아지고 물의 양도 줄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이대로 방치했다간 흉물로 전락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번사는 가뭄으로 바로 옆에 있는 구미천은 갈라진 채 바닥을 드러내어도 지금도 변함없이 샘솟으며 일대를 적시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구미천을 지나 지산 들녘을 적시는 번사물은 현재 농업용수로 농촌기반공사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 현재의 크기나 물의 양으로는 농업용수로는 어림도 없다”고 주장했다.농업용수로서의 가치가 상실된 만큼 이를 활용, 구미시민의 쉼터로 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친환경 도시 조성을 지향하고 있는 현 추세를 감안할 경우 농촌기반공사 소유의 번사를 구미시가 매입하거나 임대를 해 당시 형태를 복원한다면 구미시민들의 향수를 길어올리는 명물이 될 것이라는 게 번사 역사를 추억하는 토착민등의 바램이다.
때마침 구미시는 ‘2018년도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 중심시가지형 원평동 (구미역 일원)도시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번사와 가축시장을 복원하고, 이를 원평 중앙시장, 번사와 구미천, 낙동강 체육공원 구간을 연결해 전통의 길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안도 사업내용에 포함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번사와 구미천간의 이격된 공간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해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역사 향유의 장’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여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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