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08년 2월, 대통령직을 마감하고 고향 김해로 향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꺼내 든 노트의 빈칸을 이렇게 채워나갔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내려도 내 책임인 것 같았다.아홉시 뉴스를 보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이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가는 길이 괴롭다.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흘렀다. 모든 사안을 남의 탓이 아닌 내 탓으로 돌리면서 괴로워 헸고, 해결하려고 애썼던 노무현 전 대통령.세월은 그의 정치 철학을 재조명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 그를 추앙한다.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려고 애썼던 너무나 인간적인’ 정치인의 길을 뒤늦게 나마 마음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깊은 마음속에 누군가를 향한 적대적 감정이 마냥 없었기만 했으랴. 1988년 청문회 당시 두 눈을 부릅뜨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진 그였다. 정주영 회장에게 “국회의원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청와대의 하수인에 불과하죠”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주인공도 바로 인간 노무현 이었다.
그는 강자에게 강했고, 약자에게는 약했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7월초 취임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회자되고 있다.
“인사가 잘 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인사는 시장의 고유 권한입니다. 시장은 부하공무원을 보호해야 합니다. 근거없는 낭설로 피해를 보는 공무원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공단 50주년 기념행사에 대통령은 어떤 선물을 들고 올 것으로 봅니까”
“참석하는 것 자체가 선물 아닙니까”
대충 이러한 질의 응답이 오갔다.
물론 근거없는 설을 놓고 관련 공무원에게 흠집을 입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장세용 시장의 대응 논리를 탓할 수는 없다.시장에게는 부하공무원의 인권을 지킬 의무와 권한이 주이져 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 구미방문 자체가 구미에 대한 선물이라는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선물이 있을 것이다.
물론 취임1주년 기자회견에서 따지듯 달려드는 질문공세에 맘이 편치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세용 교수가 아닌 장세용 시장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는 43만 시장,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범시민 시장, 비판과 비난을 겸허히 수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머스러운 지혜’를 발휘하는 서민 시장을 구미시민들은 갈망하고 있다.
좀더 내면에 두고 있는 서민적 감정을 표출하는 시장이 되길 바란다. 권위주의를 배격한 장시장이 권위적 시장, 아집시장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장시장 역시도 불쾌할 노릇이다.
구미시민들은 고급관료 출신 시장보다는 서민시장에게 안기고 싶어했다, 허심탄회하게 눈시울을 붉히는 시장, 그러한 모습과 마주 앉아 허심탄회한 사연을 주고받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싶어했다. 삭막한 정치 환경을 살아온 시민들이 서민시장을 약속한 장세용 시장을 선택한 이유다. 그러나 많은 시민, 서민들은 장세용 시장을 만나 허심탄회를 털어놓을 수 없다고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훗날, 공직을 마감한 장시장이 구슬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문 앞에서 이런 글을 노트에 써 내렸으면 어떨까.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내려도 내 책임인 것 같았다.서럽고 힘든 시민들과 만나 하소연을 들어보면 어느 것 하나 시장의 책임이 아닌 것이 없었다. 시장은 그런 자리였다. 가는 길이 괴롭다. 시민 여러분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서민시장, 만남의 문턱을 낮추는 시장, 언제나 웃고 서민의 아픔을 끌어안는 평소의 가치관을 표출하는 유머스런 시장이길 바란다. 유머스러움도 정치적 자산이다.<발행인 김경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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