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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기획/역사의 도시 경북 김천, 자존심 지킨 21대 총선..
기획·연재

기획/역사의 도시 경북 김천, 자존심 지킨 21대 총선

김경홍 기자 입력 2020/04/12 19:12 수정 2020.04.12 19:12

민주당 배영애, 송언석, 배당금당 박성식, 무소속 이성룡, 이상영
민주당 배영애 후보 19대 이어 두 번째 도전
송언석 의원, 경북 현역의원 중 유일하게 단수추천받아
역대 김천 총선이 배출한 유명 정치인은

[경북정치신문=김겨홍 기자]
20대에 이어 21대 총선에서도 경북 김천은 단독 선거구를 유지하면서 역사 도시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을 얻는다.
당초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해 8월 29일 의결한 공직선거법안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수를 조정하기 위한 선거구 인구 하한 기준은 15만3650명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2019년 1월 말 인구 기준 경북지역 통폐합 우선 대상 지역은 김천시(14만1천명), 영천·청도(14만4292명), 영양·영덕·봉화·울진(13만7992명) 등 세 곳이며, 현행 13석의 지역구 의원 수는 11석으로 2석이 줄게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후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통합당, 정의당 평화당 등 여야 4당과 대안 신당(가칭) 4+1 협의체가 현행대로 지역구는 253명, 비례대표 47명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하면서 경북 김천시가 단독 선거구를 유지하게 됐다.

제20대 총선을 목전에 둔 2015년, 단독 선거구를 유지하기 위해 인구 하한선인 14만명 사수에 안간힘을 쏟아야 했던 김천으로서는 악몽이었다.

21대 총선에는 더불어민주당 배영애(74) 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 특별위원과 미래통합당 송언석(56) 국회의원, 국가혁명 배당금당 박성식(51)후보, 무소속 이성룡(62) 후보(삼성종합 화학 근무), 무소속 이상영(56)경북일보 정치부 기자 등 5명의 후보가 뛰고 있다.

19대 총선에 민주평화당으로 출마해 16.54를 얻은 민주당 배영애 후보는 두 번째 도전이다.

통합당 송언석 후보는 21대 총선에서 경북에서는 현역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단수 후보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불협화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철우 현 도지사가 도지사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실시한 2018년 재보궐 선거에서 송 후보는 전국 13곳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12곳에서 승리를 거두는 파란 속에서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시키면서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박빙의 승부수였다.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과 무소속 최대원 후보가 접전을 벌인 송 후보는 493표차로 당선됐다.

↑↑ 김천시 전경. 사진= 김천시 제공


<역대 김천 총선 포인트>

1949년 8월 15일 같은 날, 광역시로 분할이 되기 이전 경북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시와 함께 시로 승격된 김천시는 역사와 전통의 도시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김천은 정치와 교육, 경제의 꽃잎을 풀어 올렸고, 잉태한 씨알들은 도내는 물론 전국에 문명의 꽃을 피워내게 하는 종자를 제공했다.

1949년 시 승격 당시 금릉군을 포함해 19만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1960년대로 들어서면서 21만명을 마크하면서 마의 능선을 뛰어넘었다. 1965년 당시 도내 최대 인구를 자랑하던 26만5천명의 상주군과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그로부터 54년이 흐른 2019년 현재, 인구 15만명 시대를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지금의 현실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김천시 전경. 사진= 김천시 제공

▶김천의 역사와 전통을 가꿔 온 국회의원들

1948년 5월 31일 1대 국회의원 출범을 시작으로 2016년 5월 30일 제20대 국회가 문을 열기까지 68년 세월은 짧지 않은 역사였다. 6.25전쟁, 4.19와 5.16, 10.26사태, 5•18로 이어진 현대 정치는 국민들에게 아픔을 주기도 했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기도 한 때였다.

이 기간 동안 김천시(금릉군, 상주시/중선거구제)가 배출한 국회의원은 권태희, 이병관, 우문, 여영복, 문종두, 김철안, 김세영, 우동규, 백남억, 김윤하, 박정수, 정휘동, 김상구, 이재옥, 임인배, 이철우, 송언석 국회의원 등 17명이다.
하지만 1973년 9대부터 1988년 12대까지는 김천시, 금릉군, 상주시를 포괄하는 중선거구제를 통해 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이 당시 상주시 출신으로 당선된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 씨와 김윤하 씨 등 3명이었다. 따라서 사실상 김천시가 배출한 국회의원은 14명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최연소, 지역신문 사장 출신

문종두 3대 의원은 37세에 당선됐다. 41세에 당선된 임인배 의원보다도 4년 빠른 나이에 당선된 문의원은 일본중앙대학원을 수료하고 지역언론인 김천시보 사장을 지냈다. 지역 언론 사장과 최연소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기록을 남겼다.

▷중졸, 여성 국회의원

중졸 출신도 2명이나 됐다. 특히 중졸 여성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했다는 점은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추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김철안 의원이었다. 원내 자유당 부인부장을 맡고 있던 김 의원은 47세, 중졸과 여성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재선까지 지냈으니, 남성 상위 풍조의 당시로서는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5.16 이후 실시된 제6대 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백남억 국회의원

김천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백남억, 박정수 의원이다. 두 의원 모두 지역구 4선과 전국구 의원 등 5선을 지냈다.

지난 2001년 유명을 달리한 백남억 의원은 1960년 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에 선출돼 정계에 진출한 후 제3·4공화국 시절인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6·7·8·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의원까지 포함하면 5선인 셈이다. 김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17년 동안 정치 활동을 했다.

그만큼 이력도 화려하다. 1963년 당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은 그는 당시 길재호,·김진만,·김성곤과 함께 이른바 '4인방'의 일원으로 민주공화당 내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0년 당 의장서리에 오른 백 의원은 1973년 당무위원 겸 총재 상임고문을 지냈다

그러나 민주당 참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공화당에 입당, 6대부터 9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백 의원은 1979년 치러진 10대 선거에서는 46세의 신진 박정수 의원에게 쓴잔을 마셔야 했다.

2명의 정원인 김천, 금릉, 상주 선거구에 출마한 백의원은 당시 3만 5,200표를 획득했다. 1위는 박정수 4만 3,319표, 2위는 장휘동 4만 2,477표, 4위는 김윤하 3만 2,126표였다.

▷박정수 국회의원

10대 총선에서 아메리칸 대학원 출신의 46세 박정수 국회의원은 4선의 백남억의원을 누르고 김천 정치사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그러나 4선 의원을 지낸 박 의원의 정치적 행보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0대와 11대에 걸쳐 연거푸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 의원은 1985년 실시된 제12대 선거에서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2명이 정원인 김천, 금릉, 상주 선거구에 출마한 박 의원은 9만 5657표를 획득한 전두환 대통령의 동서이면서 상주 출신인 김상구 의원과 3만 3,504표를 획득한 이재옥의원에게 2천여표차로 패했다, 당시 박의원은 3만 718표를 획득했다.

그러나 13대, 14대 총선에서 연거푸 당선되면서 4선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이력을 만들어냈다. 이어 15대 국회에서는 국민회의에 입당, 전국구의원에 당선되면서 5선 의원이 됐다.

10대와 11대 무소속으로 재선에 당선된 뒤 12대 총선에서 무소속간판을 내걸고 3선에 도전했으나 패배한 박의원은 13대에서는 결국 민정당에 입당해 당선된 데 이어 14대에서는 민정당의 전신인 민자당 간판을 내걸고 4선에 성공했다.
이어 박 의원은 15대에는 국민회의에 입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는 정치적 굴곡의 길을 갔다. 민주당 참의원으로 출발, 공화당에서 4선을 지내면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포함 5선의원을 지낸 백남억 국회의원과 박정수의 의원의 정치사는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연세대 정치학과 3학년이던 1953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를 졸업한데 이어 1965년 부인 이범준과 함께 미국 아메리칸 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유학파 엘리트 박 의원의 정치적 고향은 김종필 국무총리보좌관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정치적 거물인 백남억 후보를 누르면서 이름을 알린 김의원은 1996년, 2002월드컵 유치에 전념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국구 의원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 국민회의에서 전국구 의원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입당, 부총재를 역임했다.

하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1998년 3월 외교 통상부 장관에 임명된 박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 김대중 대통령이 일분문화 개방 및 천황의 방한을 원하신다'는 발언과 서울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강제추방하는 등의 행보를 통한 정치적 상처를 입으면서 5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결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쓴 백남억 의원은 2001년, 박정수 의원은 2003년 유명을 달리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이지만 권력도 짧은 것이다. 현대 정치사의 굴곡을 헤쳐 온 두 거물 정치인에 대해 김천시민들은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임인배 국회의원

1963년부터 1996년까지 33년 동안 사실상 백남억, 박정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김천 정치사는 새로운 길을 가야 했다. 1996년 4월 실시된 총선은 그만큼 지역의 최대 관심사였다.

상황을 반영하듯 후보군도 춘추전국이었다. 당시 실시된 총선에는 9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특히 한나라당 후보인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관 출신의 임인배 의원과 서울법대 출신으로서 법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무소속 정해창 후보의 맞대결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선거 결과 임인배 후보는 3만 4,576표를 얻어 2만 9,831표를 얻은 정해창 후보를 4천700여차로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임인배 의원이 당선되자 언론은 ' 수사관 출신이 법무부 장관 출신을 이겼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9명이 후보가 난립한 선거에서 모 후보는 296표를 얻어 세상을 씁쓸하게 하기도 했다.

세간의 화제를 뿌리며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등원한 임의원은 3선과 국회 상임위원장에 오르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임의원은 말 그대로 쉽게 넘기 힘들다는 4선의 고지를 앞두고 낙천하면서 잠시 꿈을 접어야 했다.

앞길은 굴곡이었다. 2008년 10월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취임한 임의원은 3년 임기를 5개월가량 앞두고 6월 1일 이임식을 가졌다. 총선 출마를 위해 조기 사퇴를 했다는 설이 나돌면서 관심을 모았으나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이 재임 기간 중 강원랜드 카지노를 드나든 감사원 감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임의원의 걸음을 무겁게 했다.


▷무소속 출신 대거 진출 시켜

상주 선거구를 포함해 배출한 27명의 의원 중 여당 출신은 14명, 야당 2명, 무소속은 무려 11명이었다. 그만큼 김천 정치사의 이면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요인들이 많이 내재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난 2008년 실시된 총선에서는 3선 시장을 지낸 박팔용 후보가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은 3선을 지내다 2018년 실시한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에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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