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비하기 이전인 매학정과 정비를 끝낸 후 매학정/ 사진 = 구미시 제공 |
구미 출신 고산 황기로 선생의 정자 매학정 정비
황기로 선생의 걸작품 금오산 정상 후망대(候望臺) 복원해야
황기로 선생이 음각한 금오동학(金烏洞壑)도 보존 시급
[경북정치신문=김경홍 기자] 구미시가 경상북도 기념물 제16호인 매학정 일원에 대한 정비를 마쳤다.
고아읍 예강리에 위치한 매학정은 조선 중기의 명필가인 고산 황기로 선생이 지은 정자로써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서예를 즐기고 주변에 매화나무를 심고 학을 길렀다고 해서 매학정으로 불려 왔다.
이처럼 매학정 일원은 예로부터 가꿔온 구미시의 매화나무 소재지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구례의 화엄사나 양산 통도사처럼 흔치 않은 홍매화가 자라는 유적지인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시가 지난해 10월부터 정비에 나선 것은 탁 트인 낙동강과 넓은 강을 가로지르는 숭선대교, 매화나무로 둘러싸인 매학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매화나무 산책길로 명소화하기 위한 취지였다.
이를 위해 시는 주변의 기존 경작물과 각종 폐기물을 철거하고 문화재 현상 변경을 거쳐 매학정과 아울리는 전통담장과 육각 정자를 설치해 매학정과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쉼터로 조성했다.
또 노후한 문화재 안내판을 교체하는 등 이용객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흰 매화, 홍매화, 황매화를 비롯한 수목을 추가로 심어 주변 경관을 단장했다.
◇황기로 선생의 발자취 복원, 보호해야
금오산 정상 미군기지 내의 콘크리트에 묻혀 있는 황기로 선생의 걸작품인 후망대(候望臺)를 복원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 3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인 황기로 선생이 금오산 정상의 큰 바위에 초서체로 음각한 후망대(候望臺)가 미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파묻혔고, 현재 큰크리트에 덮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적으로 보물적 가치가 높은 후망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콘크리트 해체 등 옛 미군기지 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 정상 이외에도 금오산 케이블카 기점으로부터 금오산 방향 500미터 부근에는 거대한 바위에 황기로 선생이 음각한 금오동학(金烏洞壑)(金 103㎝×72㎝/ 烏 107×69/ 洞 90×52/ 壑95×50)이 있다. /사진= 김경홍 기자 |
정상 이외에도 금오산 케이블카 기점으로부터 금오산 방향 500미터 부근에는 거대한 바위에 황기로 선생이 음각한 금오동학(金烏洞壑)(金 103㎝×72㎝/ 烏 107×69/ 洞 90×52/ 壑95×50)이 있다.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절경을 뜻하는 소중한 보물인 금오동학은 보물적인 가치가 있으나 안내판만 있을 뿐 이를 보존하거나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아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글씨체가 상당부분 훼손된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고귀한 유물을 보존할 수 있는 과학적인 보호시설을 서둘러 설치하고, 아울러 시야를 어지럽히는 나무를 잘라내는 등의 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종 16년 (1521년) 지금의 고아읍 대망리 속칭 망장에서 태어난 고산 황기로 선생(1521년~1567년)은 유구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해 성인 칭호를 받는 3인 중의 한 사람이다. 문인으로 신라 시대 김생은 서성(書聖), 조선 시대 황기로는 초성(草聖), 무인으로 이순신 장군이 성웅(聖雄) 칭호를 받았다. 그만큼 황기로 선생은 한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황기로 선생은 사신단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황제 앞에 글씨를 써넣었고, 이를 본 황제는 황기로 선생을 해동초성 (海東草聖)이라고 칭했다. 왕휘지 이후 일인자라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중국사신단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황기로 선생의 글씨를 받아 가는 것을 최고의 선물로 여겼고, 금오산 정상에 올라 후망대를 바라보면서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황기로 선생은 중국에서도 성인의 예를 받던 인물이었다.
고아읍에 있는 접성산의 유래 역시 황기로 선생이 서재로 사용하던 매학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인이 태어나고 도를 닦는 매학정과 접해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접할 접(接)자에 성인 성(聖)자를 써서 접성산(接聖山)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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